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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조선의 법치를 완성한 성종 즉위하다.

by Goldwizard 2021. 12. 31.

안녕하세요 골뒹입니다. 오늘은 11469년에 즉위한 성종에 대하여 이야기할까 하는데요 성종은 조선의 제도와 법치를 완성한 왕입니다. 보통 성종이라 불리면 그 국가의 제도를 완성한 왕을 성종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종은 즉위후 10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신숙주, 한명회등과 교류로 인하여 한명회의 딸과 결혼을 하여 정치권력의 앞에 놓였다..승하한 예종의 아들이 너무 어리고 큰형은 병중이라 1469년에 예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수렴청정의 시작

  • 성종은 즉위하자마자 할머니인 자성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한명회, 신숙주 등의 훈구파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기반을 둔 것으로 꼭두각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섭정이 끝나면서 국정의 중요 결재권을 가지고 오면서 정치권력을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폐비 윤 씨 퇴출

  • 성종은 첫 왕비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후궁 중에 윤 씨를 왕비로 정한다 그러나 윤 씨는 시기심이 극에 달하여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였고 독약이 발견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에 인수대비와 원로 훈구파들은 윤 씨를 퇴출시키고 결국에는 사약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연산군이 알게 되어 피의 도륙이 발생하는 사화의 시발점이 된다.

사림파의 등용

  • 성종은 권신들의 축출을 강행하는 한편 성균관을 비롯한 지방의 향악을 지원하여 교육 및 문화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사림파를 과감히 등용하여 정치신진세력을 만들어 사림정치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성종의 시기는 문화적 부흥기로써 1492년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서적을 편찬하였다. 또한 홍문관을 설치하였으며, 호당 제도를 실시하여 문화적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 군사적으로는 윤필상으로 하여금 압록강 일대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허종으로 하여금 두만강 일대의 여진족 또한 소탕하였다. 이로써 세종시대에 개척한 사군육진에 대한 북방에 힘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처럼 1469년 즉위한 성종은 문화적 군사적으로 조선을 완성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으며, 세조로 인해 생긴 훈구세력을 축출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폐비 윤씨의 사건으로 인하여 사후 연산군의 폭정이 시작되는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두차례의 사화는 결국 조선 중기에 크나큰 참변을 겪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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